1957년 데뷔, 1962년 '밤안개'가 수록된 앨범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주로 이봉조의 노래를 불렀으며 60년대 톱가수로 활동했다. 4월 4일 오전 자택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원로 가수 현미 85세 나이로 별세
2023년 4월 4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전 9시 37분경 서울 용산구 이촌동 본인의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고인의 지병과 팬클럽 회장, 유족 등을 조사해 사인을 규명할 계획에 있다.
생애
1938년 1월생으로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이다. 본명은 김명선이다. 조카로 노사봉, 노사연과 한상진이 있다. 1.4 후퇴를 계기로 남쪽으로 내려와 두 여동생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남쪽에 정착했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될때 여동생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1957년 미8군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걸었다. 여대생 가수라는 메리트를 살려 현시스터즈로 활동했고 이후 작곡가 이봉조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했다.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다른 가수들과 달리 몇 발자국 떨어져서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1962년 이봉조와 1집을 작업하며 미국의 냇 킹 콜의 곡에 현미 본인이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하여 스타덤에 올랐다. 1965년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렀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봉조는 당시 딸이 둘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결국 이혼하고 현미를 선택했으며 이후 아들들을 낳았다. 1974년 이봉조와 별거 생활을 했으나 이봉조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현미를 그리워했다. 이후 합가하기로 했으나 1988년 이봉조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현미는 이혼한 남편 이봉조가 사망하고 30 여년간 홀로 지냈다. 이봉조를 두고 "그분 덕분에 내가 스타가 됐다. 나의 은인이자 스승이요, 애인이요,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70년대 후반부터는 가수 생활은 뜸해지고 국내 최초로 '현미 노래교실'을 만들어 성공했으며 예능 출연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 최초 50주년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현미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부를 생각이라 밝혔으며 사망 전까지도 특유의 입담으로 행사 및 예능 위주로 출연했다.
대표곡
빠른 템포와 재밌는 가사가 돋보이는 '몽땅 내 사랑'과 '두사람', '애인'도 연달아 히트했으며, 한국적인 엔카풍의 '무작정 좋았어요'도 부르며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60년대 초중반에 이어 후반까지도 최고의 스타 반열을 유지했다. 1968년 같은 해 '보고 싶은 얼굴'이란 곡을 발표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1971년 '별', 1991년 '왜 사느냐고 묻거든', 2001년 '아내', 2017년 '내 걱정은 하지마' 등이 있다. 현미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한국의 아픈 역사를 함께 하며 그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위문 공연을 무려 3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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